martes, abril 29, 2008

Por un camino de sal que tiene el sol

오늘 까사 데 아메리까(Casa de América)의 세르반테스 홀에서 진행된 훌리아 데 부르고스(Julia de Burgos)의 시작품집 발표회에 다녀왔다. 스페인에 처음 소개되는 시인의 작품집이라 발표회장이 한산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비록 넓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우선, 이번 작품집의 편집자인 후안 바렐라-뽀르따스(Juan Varela-Portas)의 인삿말과 발표회 진행에 대한 안내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훌리아 데 부르고스의 삶에 대한 5분 가량의 짧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뉴욕 맨하탄에서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인생 한 순간 한 순간을 담은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계속해서 편집자를 통해 이번 시작품집이 나오게 된 배경과 목적에 대하여 들어볼 수 있었다. 뒤를 이어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소설가이자 문학비평가인 이리스 사발라(Iris Zavala)의 훌리아 데 부르고스의 시세계와 시학에 대한 열정적인(?!) 발표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인의 조카인 꼰수엘로 사에스 부르고스(Consuelo Sáez Burgos)가 훌리아 데 부르고스의 삶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뛰어난 말솜씨로 들려주었다. 아울러 시인의 주요 작품 세 편을 낭송했다.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발표회 내내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끊이질 않았는데, 그 만큼 발표자들이나 참석자들 모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체(che)'에 대한 단상

며칠 전에 한국에 '체'에 대한 책 한 권이 또 번역, 소개되었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와 관련된 많은 도서들 중에서 역시 '체'를 주제로 한 것들만큼 한국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게 얼마나 될까? 그만큼 '체'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도 최고의 스타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혁명투사'인가, '테러리스트'인가? 어떠한 주장을 내세우더라도 무장게릴라 활동이란 결국 '테러활동'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불거지고 있는 오늘날, 더이상 폭력이 정당한 수단으로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워지고 있는 이 순간 그의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어쩌면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바대로 혁명투사 혹은 테러리스트로서의 삶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 아내와 자식을 두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목표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닐까?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감. 비록 남들이 나의 삶을 뭐라 평가할지라도, 그러한 평가에 굴함 없이 나의 삶을 후회없이 살다 감. '체'가 죽음을 앞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였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에게서 봐야 할 것은 우상화된 그의 모습이 아니라, 가족을 그리워 하는 한 명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아닐까.

lunes, abril 28, 2008

Cuba, los nuevos tiempos

El artículo que viene es de Santiago Alba Rico, escritor y filósofo izquerdista. Lo he visto en la página web Rebelión. (http://www.rebelion.org/noticia.php?id=28376) Al principio, lo he traducio en coreano para enviar a la revista electrónica del SNUILAS, TransLatin, pero no lo he podido. Por esta razón, lo subo aquí para compartir opiniones con mis compañeros.

Cuba, los nuevos tiempos (쿠바, 새로운 시대)
Santiago Alba Rico (산띠아고 알바 리꼬)

La verdad es que en los últimos 45 años España ha cambiado muchísimo y Cuba, en cambio, muy poco. Basta la mirada más superficial para tener que avenirse a este hecho incontestable y extraer las conclusiones. ¿Cuáles son? Una sobre todo: la verdad es que España, que ha cambiado mucho en los últimos 45 años, ha avanzado poquísimo y Cuba, porque ha cambiado muy poco, ha avanzado muchísimo. Mientras que España, ex-potencia colonial, renunciaba definitivamente a su independencia y soberanía aceptando un neofranquismo jovial, una rendición en color, un candado fosforescente, Cuba aguantaba una invasión, un bloqueo, la existencia de la Unión Soviética, la ausencia de la Unión Soviética, el terrorismo incesante de los EEUU para conservar inalteradas hoy, casi cinco lustros más tarde, las condiciones del libre movimiento y la autodeterminación democrática. Cuba ha sacrificado 45 años, pero no los ha perdido; España ha perdido 45 años (o 450) porque nunca ha estado dispuesta a sacrificar otra cosa que su conciencia. España se deja cambiar; Cuba no. España se siente satisfecha de que la cambien a la fuerza; Cuba se siente a veces cansada del largo esfuerzo para que no la cambien.
지난 45년 동안 스페인이 많은 변화를 겪은 반면 쿠바는 그러한 변화가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피상적으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항변할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결과들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그 결과들이란 무엇인가? 우선 지난 45년 간 많이 변화를 겪은 스페인에 발전이 거의 없었던 데 반해, 쿠바는 거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큰 발전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강력한 식민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이 막 형성된 신(新)프랑코주의, 채색된 굴복, 형광색 자물통을 받아들여 자신의 독립과 주권을 결국 포기하였다면, 쿠바는 침략, 봉쇄, 소련의 존재와 부재, 쉼 없는 미국의 테러를 견뎌내고 오늘날까지 거의 25년 동안 자유활동과 민주자결의 조건들을 변함 없이 지켜왔다. 쿠바는 45년을 희생하였다. 그러나 그 세월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에 반해 스페인은 45년(혹은 450년)을 잃었다. 자신의 양심 이외에 다른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이 변화에 몸을 맡겼다면, 쿠바는 그렇지 않았다. 스페인이 강제로 변하는 것에 만족해 했다면, 쿠바는 변하지 않으려는 오랜 노력 속에 가끔 피곤함을 느꼈다.
En un libro tan bello como olvidado, Huracán sobre el azúcar, Jean-Paul Sartre escribía sobre su visita a Cuba apenas 18 meses después de la revolución: “Cada uno de sus progresos puede resultarle fatal, pues en cada uno de ellos afirma su irreductible voluntad de independencia. En consecuencia, el peligro proviene de sus mejores obras y crece con su mejoramiento; es una carrera contra el reloj”. Era marzo de 1960 y en el puerto de La Habana acababa de estallar el barco francés La Coubre, pero Sartre sólo podía adivinar temeroso la invasión de Bahía de Cochinos y el bloqueo estadounidense, que aún no habían descargado su furia contra Cuba. La revolución cambió radicalmente el país en 1959 y se negó luego a cambiar ese cambio; y por cada cosa buena que se desprendía de él, por cada “mejoramiento” social –como decía Sartre- recibió y sigue recibiendo un golpe. Es hasta tal punto difícil aceptar semejante derrotero moral que incluso algunos izquierdistas europeos han acabado por asociar un castigo tan gratuito y brutal a un pecado interno, pero lo cierto es que la agresión contra Cuba –contradiciendo todos los principios pedagógicos- es tanto mayor cuanto mejor se porta la revolución. Lo que a EEUU le gustaba de Pinochet, de Videla, de Somoza, de Marcos, de Suharto, del Sha de Persia, del régimen sudafricano del apartheid; lo que le gusta de Musharraf, de Mohammed VI, de Mubarak, de Abdalah, de Uribe –y por lo que les recompensa- es que producen pobres, enfermos y cadáveres (y muchos canallas). Lo que a EEUU no le gusta de Cuba, y ese es el único motivo de todas sus represalias, es que sea el único país de Latinoamérica sin desnutrición infantil, el único que da de comer a toda su población, el único sin analfabetos, el único que no mendiga, el único que no duerme en la calle, el único que cura todas las enfermedades curables, el único que investiga las incurables, el único cuya fuerza laboral está compuesta de un 60% de bachilleres o universitarios, el único en el que un ministro y un conductor de autobús discuten en pie de igualdad, el principal exportador del mundo de alivios médicos, el principal exportador del mundo de instrucción escolar, el que tiene menos prostitución, el que tiene menos corrupción, uno de los que menos inmigrantes desplaza al exterior y, no por casualidad, el que produce menos canallas y más conciencias del planeta. El monótono y criminal bloqueo aplicado contra Cuba desde hace 45 años es una estrategia para impedir estos “mejoramientos” pero también es una forma de castigarlos: un niño sin hambre, un niño sin frío, un niño curado –salvo que enriquezca a la Roche y empobrezca a cien mil- es un pecado intolerable contra el proyecto moral de los EEUU y debe ser inmediatamente expiado por todos los medios. Allí donde las palabras independencia, seguridad, igualdad, derecho, significan algo; allí donde un niño tiene arroz, un obrero lee a Lezama Lima y un ciego vuelve a ver gratis, inmediatamente se arma un ejército contra ellos y cien moralistas de la prensa –en Madrid y en Nueva York- le invitan a disparar.
훌륭하지만 잊혀졌던 저서인 『설탕 위의 허리케인(Huracán sobre el azúcar)』에서 장 폴 사르트르는 혁명이 끝나고 18개월이 지난 쿠바에 방문하였던 경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진보 하나하나가 그곳(쿠바)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진보 하나하나에서 환원될 수 없는 독립에 대한 의지가 굳건해져 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위험은 최선의 작업들에서 기인하며 개선과 함께 커져간다. 이것은 시간에 반하는 길이다.” 이 때가 1960년 3월이었고 아바나 항(港)에서 프랑스 선박 라 코브레(La Coubre) 호(號)가 폭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오직 가공스러운 코치노스 만(灣) 침공과 미국의 봉쇄만을 예견할 수 있었다. 미국은 여전히 쿠바에 대한 그들의 분노를 내려놓지 않았다. 혁명은 1959년에 쿠바를 밑바탕에서부터 바꿔놓았다. 그리고는 그 변화를 변화시키길 거부하였다. 그로부터 나온 좋은 것 하나하나로부터, 사르트르가 말하였듯이 사회적 ‘개선’ 때문에 쿠바는 충격을 받았고 여전히 받고 있다. 몇몇 유럽 좌파주의자들까지 근거도 없고 잔인하기만 한 처벌을 내부의 죄를 짝지어 버리고만 유사한 도덕적 여정을 받아들이기란 그 정도로 어렵다. 그러나 쿠바에 대한 공격은, 모든 교육적 원칙들을 부정하며, 혁명이 더욱 잘 진행될수록 더 커진다는 점은 확실하다. 미국이 피노체트, 비델라, 소모사, 마르코스, 수하르토, 페르시아 국왕, 인종차별정책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정권을 좋아하는 이유는, 상을 주면서까지 무샤라프, 모하메드 6세, 무바라크, 압달라, 우리베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난, 질병, 죽음과 수많은 악당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미국이 쿠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유아 영양결핍이 없는 유일한 라틴아메리카 국가이자, 국민을 굶기지 않는 유일한 국가이자, 문맹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자, 구걸하는 사람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자,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자, 치료 가능한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유일한 국가이자, 불치병을 연구하는 유일한 국가이자, 노동력의 약 60%가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졸업자인 유일한 국가이자, 장관과 버스운전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을 하는 유일한 국가이자, 세계적인 주요 의료원조 수출국가이자, 세계적인 주요 학교교육 수출국가이자, 매춘이 더 적은 국가이자, 부정이 더 적은 국가이자, 외국으로 이주하는 이민자가 더 적은 국가이자, 필연적으로 세계적으로 더 적은 악당과 더 많은 양심을 생산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보복의 유일한 이유이다. 45년 동안 쿠바에 적용된 천편일률적이고 범죄적인 봉쇄는 이러한 “개선들”을 방해하기 위한 전략이자, 또한 배고픔이 모르는 아이, 추위를 모르는 아이, 치료받은 아이를 벌주기 위한 방법이다. 로슈 사(社)를 부유하게 하고 만 명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 말고는 모든 게 미국의 도덕적 프로젝트에 반하는 참을 수 없는 죄이자, 모든 수단을 통해 즉시 벌을 받아야 하는 죄인 것이다. 독립, 안전, 평등, 권리와 같은 단어들이 의미를 갖는 그곳에서, 아이가 쌀을 가지고 있고 노동자가 레사마 리마의 작품을 읽으며 장님이 무료치료로 시력을 되찾는 그곳에서, 그들을 적대시하는 군대가 즉시 무장을 하고 마드리드와 뉴욕에서 백 명의 언론계 도덕주의자들이 그 군대에게 총을 쏘도록 권유한다.
Quien no ha cambiado nada en los últimos 45 años, si se piensa bien, es EEUU. La verdad de Cuba, a la que no debemos ceder -aunque sí ajustar- nuestro espíritu crítico, es esa “carrera contra el reloj” de la que hablaba Sartre y que convierte cada medida del gobierno revolucionario en una “réplica”. Comer sin ellos, sanar sin ellos, reír sin ellos, leer sin ellos, escribir sin ellos es socialismo; comer, sanar, reír, leer y escribir contra ellos es todavía una dependencia. Pero sobre el horizonte de esta dependencia, Cuba ha avanzado mucho en los últimos 45 años. Los cubanos, decía Sartre en 1960, tienen “la urgencia de los tomates y las plantas eléctricas” y mucho menos “la de las instituciones”. Esa urgencia se mantiene aún hoy y para satisfacer sus demandas –lo confieso- quizás estaría dispuesto incluso a aprobar con frívola distancia una “militarización” de la producción, pero precisamente por eso no puedo dejar de agradecer, con la misma frívola distancia, la milagrosa fortaleza de la revolución cubana, que se ha querido conceder un margen de independencia formal mayor del que la amenaza real habría justificado. Con retrocesos, rectificaciones y vaivenes, lo cierto es que la revolución cubana se institucionalizó también; en los años setenta se dio una Constitución, un Parlamento, elecciones formalmente mucho más participativas que las nuestras; corrigió su política homofóbica, al contrario que la mayor parte de los países de la región, incluidos los EEUU; superó la esclerosis cultural de los años grises y ha desentumecido su cultura y su prensa, de un modo quizás todavía insuficiente, pero tanto al menos como para no recibir lecciones de El País y sus editoriales sobre Haití o Venezuela o de Javier Marías y sus indigestiones egocéntricas. En nombre de “la carrera contra el reloj” y la “lucha contra el terrorismo”, Cuba habría podido imponer con más legitimidad que Bush una dictadura y no lo ha hecho porque ha sabido en todo momento que defender la revolución era defender la democracia, un grado menos quizás de la que habrá sin ellos pero un grado más de la que su presión permite.
지난 45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은 잘 생각해 보면 미국이다. 조정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비판정신을 양보해서는 안 되는 쿠바의 진실은 바로 사르트르가 말한, 혁명정부의 모든 조치들을 “항변”으로 바꾸는 “시간에 반하는 길”이다. 그들 없이 먹는 것, 그들 없이 치료하는 것, 그들 없이 웃는 것, 그들 없이 읽는 것, 그들 없이 쓰는 것은 사회주의이다. 반면에 그들에 대항하여 먹고, 치료하고, 웃고, 읽고, 쓰는 것은 아직까지 종속이다. 그러나 이 종속의 지평 위에서 쿠바는 지난 45년 동안 많이 발전하였다. 1960년에 사르트르는 쿠바인들에게 “토마토와 전기시설을 갖춘 공장”은 절박하지만 “제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였다. 그 절박함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하다.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거의 생산활동의 “군대화”까지 승인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쿠바 혁명의 거의 기적적인 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쿠바 혁명은 실제 위협이 정당화했을지도 모를 것보다 더 큰 형식적인 독립의 테두리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분명히 후퇴, 수정, 동요를 통해 쿠바 혁명 역시 제도화되었다. 70년대에 헌법과 의회, 그리고 형식적으로 우리의 선거들보다 훨씬 더 참여적인 선거들이 나타났다. 잿빛 시대의 문화적 경화현상을 극복하고 문화와 언론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아마 아직 불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이티, 베네수엘라, 하비에르 마리아스에 대한 『엘 빠이스』와 출판사들의 충고나 그들의 자기중심적인 소화불량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시간에 반하는 길”과 “테러에 대항하는 투쟁”의 이름으로 쿠바는 부시보다 더 합법적으로 독재를 강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혁명을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임을 항상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민주주의는 그들 없이 가능했을 때보다 아마 한 단계 낮을지는 모르나 그들의 압력이 허용하는 것보다는 한 단계 더 높은 것이다.
A veces la izquierda europea, en los últimos años, no ha sabido seguir a Sartre; ahora se le ofrece la mejor oportunidad histórica para rectificar su posición. Minoritaria, aislada, dividida, la izquierda europea puede seguir blandiendo una idea contra la isla en la que fructificó su semilla y enhebrando palabras contra el único país donde significan algo. Hay once mil especies de plantas y animales amenazadas de extinción que desaparecerán en los próximos treinta años, pero es incalculable el número de ideas y palabras que ya han desaparecido. Las palabras, como los animales, necesitan un medio ecológico concreto para desarrollar sus funciones, reproducirse y transformar favorablemente el entorno. Periódicos como Diagonal o Rebelión son pequeños microclimas donde esas palabras se conservan un poco artificialmente; pero nuestros periódicos alternativos, como nuestras ranas, no lo olvidemos, están siempre en peligro de extinción. Una palabra necesita un país para significar algo y toda la tierra para significar mucho. Cuba ha cambiado poco y avanzado mucho en 45 años de resistencia y hoy precisamente se revela hasta qué punto ha sacrificado, pero no perdido, ese tiempo. Lo ha ganado para todos; con esa idea y algunos errores ha construido heroicamente el muro donde ahora todos podemos apoyarnos. Gracias a que Cuba se mantenía ahí, como una salud latente, como una planta agarrada a la roca a la espera de un clima nuevo, cuando Bolívar volvió a Venezuela tuvo también donde agarrarse; y cuando la Pachamama volvió a Bolivia tuvo también donde agarrarse. Resulta que Cuba, porque no cambió, seguía por delante de todos y es de nuevo el comienzo de todo. Cuba aguantó pequeñita, arrinconada, imprevisible, para que Latinoamérica renaciente tenga hoy un asidero donde fecundar su esqueje. Sería ingratitud, además de estupidez, rechazar ese hombro.
최근에 유럽의 좌파는 때때로 사르트르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그들의 위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역사적으로 최상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고립되고 분열된 소수로서 유럽의 좌파는 그들의 씨앗이 열매를 맺었던 섬에 반하는 생각을 계속해서 내세우고,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유일한 국가에 반대하는 말들을 밥 먹듯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30년 내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만 이천 여 종의 멸종위기의 식물과 동물이 있다. 그러나 이미 사라져 버린 생각과 말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가 없다. 동물들처럼 말도 자신의 기능을 발전시키고 스스로를 재생산하며 주변환경을 우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 『디아고날』이나 『레벨리온』과 같은 신문들은 이러한 말들이 약간은 인위적으로 보존되는 미시적 기후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안신문들 역시 우리의 개구리들처럼 멸종의 위험 속에 항상 처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말은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기 위해 한 국가를, 그리고 많은 것을 의미하기 위해 모든 땅덩어리를 필요로 한다. 쿠바는 45년이라는 저항의 시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채 크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지금 그 시간 동안 잃음 없이 어디까지 희생하였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두를 위해 그것을 이뤄냈다. 그러한 생각과 약간의 실수들을 통해 영웅적으로 지금 우리 모두가 서로 도울 수 있는 둑을 만들었다. 쿠바가 잠재적인 상태로, 새로운 기후를 기다리며 바위를 꽉 붙들고 있는 나무처럼 그곳에 남아있었기에, 볼리바르가 베네수엘라로 돌아갔을 때 역시 뿌리를 내릴 곳을 가졌고, 라 빠차마마가 볼리비아로 돌아갔을 때 또한 뿌리를 내릴 곳을 가졌다. 결국 쿠바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 모두의 앞에서 나아갔고 다시금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다. 쿠바가 작은 나라로 궁지에 몰리고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을 견뎌냈기에 다시 태어나는 라틴아메리카는 오늘 그 접목을 풍요롭게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어깨를 저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배은망덕한 일일 것이다.

넓이와 깊이, 그리고 선택

It is not that the presence of poetic qualities compels a certain kind of attention but that the paying of a certain kind of attention results in the emergence of poetic qualities. - Stanley Fish

The need for a relatively more unbuttoned, unfixed, and mobile mode of proceeding -that's why the Deleuzian idea of the nomadic is so interesting- is to me a much more useful and liberating instrument. Much of what we are talking about is essentially unhoused. You might say the real conflict is between the unhoused and the housed. - Edward Said

요즘 들어 내 머리를 사로잡고 있는 두 가지 난제가 있다. 넓이와 깊이의 문제! 우선 이 시대가 요구는 지식은 과연 넓은 지식일까, 깊은 지식일까? 물론 넓고 깊은 지식을 한꺼번에 가질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나는 나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감히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이러한 현실적인 지점에서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선택의 문제! 과연 내가 선택을 하는 것일까, 선택하도록 조종을 당하는 것일까? 나는 선택의 진정한 주체일 것일까, 아니면 의도된 선택을 하는 단순한 행위자에 불과한 것일까? 스탠리 피쉬와 에드워드 사이드의 위 인용들은 나에게 이 두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주는 동시에 또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머리를 쥐어뜯을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민의 여정!

sábado, abril 26, 2008

Novels of Testimony and Resistance from Central America

"중미에서의 증언과 저항의 소설들(Novels of Testimony and Resistance from Central America)"은 노스파크 대학교(North Park University)의 스페인어학과(Department of Spanish) 교수인 린다 크래프트(Linda J. Craft)가 1997년 플로리다 대학교 출판부(University Press of Florida)를 통해 발표한 총 247쪽(서문 등 10쪽 포함) 분량의 저작이다. 이 저서에서 크래프트는 과테말라 출신의 아르뚜로 아리아스(Arturo Arias), 엘살바도르 출신의 만리오 아르게따(Manlio Argueta)와 끌라리벨 알레그리아(Claribel Alegría), 그리고 니카라과 출신의 히오꼰다 벨리(Gioconda Belli)의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중미의 증언소설에서 드러나는 개별적인 혹은 공통적인 특징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증언소설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한다.

Ay, ay, ay, de la grifa negra

까사 데 아메리까(Casa de América)의 5월 문학행사를 알아보다 낯선 이름을 발견하였다. 훌리아 데 부르고스(Julia de Burgos, 1914-1953)!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여류시인이라고 한다. 호기심에 인터넷을 통해 그녀에 대한 정보들을 검색해 보았다. 자료들에 따르면, 그녀는 첫시집을 발표한 1930년대부터 가브리엘라 미스뜨랄(Gabriela Mistral), 후아나 데 이바르보우로우(Juana de Ibarbourou), 알폰시나 에스또르니(Alfonsina Storni) 등과 함께 중남미를 대표하는 4대 여류시인으로 꼽혔다. 푸에르토리코의 한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난 그녀는 푸에르토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처음에는 교사로 일했는데, 결혼 후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더불어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을 주장한 푸에르토리코 민족주의당(Partido Nacionalista de Puerto Rico)의 하위조직인 "자유의 딸들(Hijas de la libertad)"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활동으로 인하여 첫 번째 이혼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후 몇 번의 결별과 이혼을 겪으며 그녀의 불행한 가정생활은 결국 그녀를 죽음의 길로 내모는 결과를 낳게 된다. 뉴욕을 중심으로 시인으로서 활동가로서 열심히 활동하던 그녀는 어느날 실종되었다가 뉴욕 할렘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무연고 시체로 시립묘지에 매장되었던 그녀의 유해는 이후 지인들의 노력으로 푸에르토리코로 이장되었다. 그녀의 문학적, 정치적 업적은 사후에도 널리 인정을 받아 푸에르토리코는 물론이고 뉴욕, 필라델피아, 펜실바니아 등의 거리와 기관들에 그녀의 이름이 붙여졌고, 푸에르토 대학교에서는 그녀에게 명예박사학위를 헌정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Río grande de Loíza", "Poema para mi muerte", "Yo misma fui mi ruta", "Alba de mi silencio", "Alta mar y gaviota" 등이 있다.

Un árbol sin hojas que da sombra

지난해 11월 2007년도 세르반테스문학상(El Premio Cervantes) 수상자로 선정된 아르헨티나 출신의 시인 후안 헬만(Juan Gelman)이 지난 4월 23일 책의 날을 맞이하여 알깔라 데 에나레스 대학교(Universidad de Alcalá de Henares) 대강당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스페인을 찾았다.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시인은 그의 정치적 삶과 현실참여시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자신은 누구를 옹호하기 위해서 아니라 시를 지키기 위해 글을 썼다."고 대답하고, "자신의 시는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시라기 보다는 상처를 치유하는 방향유(bálsamo)와 같은 시이며, 그러한 필요에 의해(por necesidad) 시를 썼다."고 회상하였다. 또한, "무(無, la nada)와 공(空, el vacío)은 같은 것이 아니며, 자신에게 있어 시란 그늘을 제공하는 이파리 없는 나무와 같다."고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한편, 후안 헬만은 시상식에 앞서 4월 21일과 22일 이틀 동안 까사 데 아메리카(Casa de América)에서 개최된 그에 헌정된 두 차례의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첫째 날 토론회에서는 "후안 헬만의 새로운 칼럼(La nueva prosa de prensa de Juan Gelman)"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후안 끄루스(Juan Cruz)의 진행으로 오라시오 베르빋스끼(Horacio Verbitsky), 후안 까를로스 알가냐라스(Juan Carlos Algañaraz)가 발표를 하였다. [Video#1] "망명생활의 방법들(Maneras de vivir el exilio)"이라는 주제의 둘째 날 토론회에서는 마르꼬 안또니오 깜뽀스(Marco Antonio Campos)의 사회로 까를로스 몬시바이스(Carlos Monsiváis), 에두아르도 우르따도(Eduardo Hurtado), 후안 라몬 데 라 푸엔떼(Juan Ramón de la Fuente) 등이 발표를 하였다. [Video#2]

Mi Buenos Aires querido
- Juan Gelman

Sentado al borde de unas silla
desfonadada,
mareado, enfermo, casi vivo,
escribo versos previamente llorados
por la ciudad donde nací.

Hay que atraparlos, también
aquí
nacieron hijos dulces míos
que entre tanto castigo te
endulzan bellamente.
Hay que aprender a resistir.

Ni a irse, ni a quedarse,
a resistir,
aunque es suguro
que habrá más penas y olvido.

로베르또 볼라뇨, 그를 말하다

3일 전 웹진 ClubCultura.com을 통해 로베르또 볼라뇨(Roberto Bolaño)에 대한 비평서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책의 제목은 "야생의 볼라뇨(Bolaño salvaje)"로, 에드문도 빠스 솔단(Edmundo Paz Soldán)과 구스따보 파베론 빠뜨리아우(Gustavo Faverón Patriau)가 편집을 맡았으며 깐다야 출판사(Editorial Candaya)에서 출판을 맡았다. 전체 쪽수가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볼라뇨의 작품세계에 대한 아메리카와 유럽의 비평가들의 총 25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편집자 중 한 명의 에드문도 빠스 솔단은 이 비평서 출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Habría sido interesante ver hoy a un Bolaño ya consagrado: crítico con un mundo literario, pero a la vez ganador de grandes premios y publicando en las editoriales más importantes". 한편, 이 책에는 네덜란드 출신의 영화감독 에릭 하스눗(Erik Haasnoot)이 감독한 "가까운 볼라뇨(Bolaño cercano)"라는 영화의 DVD로 함께 제공된다. 40분 가량의 이 영화에서는 그의 미망인 까롤리나 로뻬스(Carolina López)와 두 자녀 알렉산드라 볼라뇨(Alexandra Bolaño)와 라우따로 볼라뇨(Lautaro Bolaño), 그리고 가장 친한 동료들이었던 안또니 가르시아 뽀르따(Antoni García Porta), 엔리께 빌라-마따스(Enrique Vila-Matas), 로드리고 프레산(Rodrigo Fresán), 후안 비요로(Juan Villoro) 등의 증언을 통해 볼라뇨의 삶과 글쓰기가 이야기된다. 그의 공식홈페이지에서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 그리고 몇몇 글들을 살펴볼 수 있다.
[Roberto Bolaño's Official Home Page]

jueves, abril 24, 2008

Página web de Alan Pauls

He encontrado la página web de Alan Pauls: http://www.sololiteratura.com/pauls/paulsprincipal.htm

Contiene su semblanza, introducciones de sus obras, algunos de sus artículos y otras cosas. Este escritor argentino me dio impresión muy fuerte en la mesa redonda sobre Ricardo Piglia, llevada al cabo en Casa de América en abril de este año. Alan Pauls. Me será un nombre que no va a olvidarse fácilmente.

리까르도 삐글리아와의 만남

까사 데 아메리까(Casa de América)에서는 지난 4월 14일(월)부터 19일(토)까지 1주일 간을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리까르도 삐글리아(Ricardo Piglia)의 주간으로 선정하고 그의 문학과 삶에 대한 토론회(Mesa redonda)와 강연회(Conferencia magistral),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와 관련된 전시회(Exposición) 등을 개최하였다. 첫째 날인 4월 14일에는 호르헤 까리온(Jorge Carrión)의 진행으로 "편집증적인 소설(La novela paranoica)"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에두아르도 베세라(Eduardo Becerra), 벤하민 쁘라도(Benjamín Prado), 후안 비요로(Juan Villoro) 등이 발표를 하였다. [Video#1] 둘째 날인 4월 15일에는 "삐글리아와 이미지: 영화와 만화(Piglia en imágenes: cine y comics)"라는 주제로 후스또 바르보사(Justo Barboza)의 진행 아래 마르셀로 피게라스(Marcelo Figueras), 루이스 에스까파띠(Luis Scafati), 페르난도 에스삐네르(Fernando Spiner) 등이 발표를 하였다. [Video#2] 셋째 날인 4월 16일에는 다니엘 메사 간세도(Daniel Mesa Gancedo)가 진행을 맡고 이그나시오 에체바리아(Ignacio Echevarría), 그라시엘라 에스페란사(Graciela Esperanza), 후안 가브리엘 바스께스(Juan Gabriel Vásquez) 등이 "간결한 형식: 단편소설(Formas breves: el cuento)"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발표하였다. [Video#3] 넷째 날인 4월 17일에는 삐글리아의 인터뷰형식의 비평서인 "비평과 픽션(Crítica y ficción)"에 대하여 에스뻬란사 로뻬스 빠라다(Esperanza López Parada)의 진행으로 빠블로 데 산띠스(Pablo de Santis), 후안 안또니오 마솔리베르 로데나스(Juan Antonio Masoliver Ródenas), 알란 빠울스(Alan Pauls) 등이 발표를 하였다. [Video#4] 다섯째 날인 4월 18일에는 삐글리아의 강연회가 있었다. 강연제목은 "문학이란 무엇일까? 세 편의 유년시절의 이야기(¿Qué será la literatura? Tres historias de infancia)"였다. [Video#5] 그리고 마지막 날인 4월 19일에는 "뽀스땅고스(Postangos)"라는 제목으로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겸 피아노 연주자인 헤라르도 간디니(Gerardo Gandini)의 피아노 연주회와 삐글리아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 "부재의 도시(La ciudad ausente)"의 DVD 상영, 그리고 탱고 가수 넬리 사뽀리띠(Neli Saporiti)의 노래 두 곡이 이어졌다. [Audio#1] 매 토론회에서는 토론자의 발제가 끝난 후 삐글리아의 간단한 코멘트와 관객들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삐글리아는 시종일관 여유와 위트로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토론회와 강연회는 매회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토론자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토론회에 참석하였던 알란 빠울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청소년 시절 삐글리아의 작품에 빠져 지냈으며 오늘 자신이 작가의 삶을 살게 된 데 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며 시작된 그의 발표는 한 편의 작품과도 같았다. 진지한 태도와 빼어난 발표로 관객들의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사실 아직까지 스페인어가 익숙하지 않아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러한 토론회나 강연회에 올 때마다 많은 자극을 받곤 한다. 더불어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얼마나 매력적인 길인지 새삼 깨닫는다. 이번 리까르도 삐글리아와의 만남도 살아가며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좋은 경험이었다.

시작!

2006년 6월의 마지막 날. 나는 이곳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마드리드 유학생활은 어느덧 두 해에 다다르고 있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과연 내가 이룩한 것은 무엇이며, 또한 잃은 것은 무엇일까? 시간은 쉼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뚜렷이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꿈은 원대히 세웠으되, 오늘의 내 모습은 그때와 같지 않구나. 始終如一이라 하였거늘... 그래 시작은 언제나 늦지 않은 법. 다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