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eves, julio 17, 2008

¿Porqué no ha podido ganar el Premio Nobel la Literatura Coreana?

지난 3월 6일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로 유명한 김성곤 교수는 서울신문에 "한국문학, 왜 노벨문학상 못 받을까?"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사설을 기고하였다. 사설에서 김 교수는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 우선 국력이나 국가의 이미지가 약한 현실을 꼽고 있다. 아울러 그러한 현실이 해외 출판시장에서 한국문학의 상업성 약화로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그렇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과거의 민족문학이나 민중문학의 전통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거나 개인의 사적인 고뇌, 가족 간의 갈등, 불륜의 미화 등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작금의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의 흐름에 크게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문학에서는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매슈 펄의 "단테 클럽",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J. K. 롤링의 "해리 포터"와 같은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이 절대적 진리나 신념에 대한 회의, 또 하나의 진리나 감추어진 역사에 대한 새로운 조명,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대립,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 경계 해체, 스스로를 진리나 순수혈통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독선과 횡포 그리고 그들로부터 차별받는 소수그룹과 혼혈들의 발견과 인정 등이 지난 60년대 이후 전 지구적으로 시작된 거대한 인식의 전환을 잘 반영해주는 공통 관심사이다. 따라서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한반도라는 우물에 갇혀 있지 말고 세계 작가들과 소통하여야 하며 그러다 보면 고유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니는 훌륭한 작품들이 나오게 되고 자연스럽게 한국문학에게도 세계문단의 인정과 노벨문학상이 주어질 것이라며 김 교수는 사설을 마무리 짓는다.
분명 노벨문학상의 수상은 국가적인 명예이자 높아진 한국문학의 위상을 드러내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과연 김 교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한국작가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일면 수긍하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머리를 갸웃 거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문학의 가장 큰 약점은 언어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인들이 한국문학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언어로 한국문학이 번역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번역인프라는 조약하기 그지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그들 문학의 번역사업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문학번역원 등에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우리의 두 이웃 국가와 비교해 보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한국작가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 역시 사실이다. 한국의 작가들은 그저 작가로서 안주하는 경향이 높은 것 같다. 마치 세상사와는 상관없는 제 3자인 것처럼 살아가는 작가들이 많아 보인다. 그렇지만, 세계인들의 존경과 관심을 받는 작가들은 단순히 '작가'라는 범주를 넘어서 이 시대의 '지식인'이자 '지성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글뿐만 아니라 행동으로서 그들의 사상과 신념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작품인 것이다. 한국문단에는 그러한 작가들이 부족해 보인다. 혹은 '지식인'이나 '지성인'을 잘못 이해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 시대의 '지식인'이나 '지성인'으로 불리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적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그에 따른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통찰과 대안을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작가'의 모습이다.
문학(비평)을 전공하는 한 학도로서 한국문학이 한층 더 발전된 모습으로 성숙하기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원해 본다.